유럽이 직면한 핵심 질문: 번영과 국방은 공존할 수 있을까

"풍요가 곧 방패이던 시대는 끝났다" 유럽 복지국가의 위태로운 갈림길

세이프의 좁은 정문, 뒷문으로 흐르는 튀르키예 — 유럽 방산의 민낯

칼과 보습 사이에서 — 유럽이 마주한 안보와 존엄의 딜레마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확립한 '고복지 국가'라는 이상은 현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방 예산을 증액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이 사회복지 지출을 삭감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정이 다양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난로를 끌 것인가, 자물쇠를 살 것인가 — 유럽 앞에 놓인 세기의 저울

 

오래된 집 한 채가 있다. 겨울은 깊어지고 담장 밖에서는 낯선 발소리가 잦아진다. 집주인은 밤마다 같은 셈을 되풀이한다. 따뜻한 난로를 지필 것인가, 튼튼한 자물쇠를 살 것인가. 난로를 끄면 식구가 떨고, 자물쇠를 미루면 문이 뚫린다. 오늘의 유럽이 꼭 이 집을 닮았다. 번영과 국방, 두 손에 쥔 것을 한꺼번에 지킬 수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 대륙 전체가 골몰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위에서 유럽은 하나의 이상을 세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시민을 돌보는 고복지 사회다. 그 약속은 오래도록 유럽의 자부심이었고, 대서양 건너 미국이 방패를 들어 주는 동안 유럽은 마음 놓고 복지의 곳간을 채웠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터지고, 이란과 미국과 이스라엘의 충돌이 불에 기름을 부으면서, 안락했던 셈법이 흔들린다. 국방비를 늘려야 하는 각국이 과연 복지의 곳간을 열어 그 비용을 댈 것인가. 답은 아직 안갯속에 있다.

 

앙카라의 싱크탱크 세타(SETA)의 안보 전문가 시벨 뒤즈 박사는 흥미로운 진단을 내놓는다. 복지 지출을 곧바로 줄여 그 예산을 방위산업으로 넘기는 일은 유럽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내부 사회 지출 통계도 그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가 던진 한마디는 서늘하다. 한 시대가 저문다면, 그것은 번영만으로 안보가 보장된다는 오랜 믿음이 저무는 것이라는 말이다. 풍요가 곧 방패이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고백인 셈이다. 총이냐 빵이냐, 경제학 교과서의 해묵은 물음이 이제 유럽 정치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온다. 반세기 넘게 유럽은 이 물음을 미국에 떠넘긴 채 빵을 골랐다. 그 사치가 끝나 간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울린다.

 

그렇다면 돈은 어디서 나올까

 

뒤즈 박사는 정치의 속살을 짚는다. 정부가 국내 복지를 직접 손대는 순간, 좌우의 포퓰리즘 정당이 성난 표심을 파고든다. 연금과 의료를 건드린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각국은 더 조용한 문을 연다. 바로 해외 원조와 개발 협력 예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독일과 영국,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국제 원조를 줄여 나간다. 그 자리에 국방 예산이 슬며시 들어선다. 표를 잃지 않으면서 곳간을 채우는 가장 손쉬운 길이, 먼 나라를 향한 온정을 거두는 일인 셈이다. 화면 밖 낯선 이의 굶주림은 투표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가장 약한 자의 몫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이 조용한 셈법 앞에서, 나는 오래 마음이 무거웠다. 국경 안의 표는 지키면서 국경 밖의 생명은 뒷줄로 미루는 계산이, 과연 안전을 사는 값이라 부를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증액의 명분도 새 옷을 입는다. 뒤즈 박사는 유럽의 국방 투자가 '전략적 자율성, 고용, 제조업 육성'이라는 언어로 포장될 것이라 내다본다. 무기를 사자는 말보다 일자리를 만들자는 말이 유권자의 마음을 더 쉽게 연다. 두려움 대신 살림살이를 앞세우는 화법이다. 유럽연합이 1,500억 유로 규모의 방위 기금 세이프(SAFE)를 꺼내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기금에는 부품 조달의 35퍼센트 이상을 역외에서 들여올 수 없다는 조항이 박혀 있다. 유럽의 돈으로 유럽의 공장을 돌리고, 유럽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이 기금은 이미 벨기에와 스페인,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의 계획을 승인하며 수백억 유로를 풀기 시작했다. 대륙 전체가 무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셈이다.

 

여기서 한 나라의 이름이 떠오른다

 

바로 튀르키예이다. 수도 앙카라는 이미 세계 11위의 무기 수출국이다. 2024년 방산 수출은 71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한때 80퍼센트에 이르던 해외 의존도를 20퍼센트까지 끌어내렸다. 안보 전문가 뒤즈 박사는 튀르키예의 무인기가 여러 분쟁지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군사 기술이 곧 외교적 지렛대이자 국제 무대의 존재감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유럽이 급히 필요로 하는 포탄과 드론을 빠르게 찍어낼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가 튀르키예다. 그러나 방위 기금, 세이프의 역내 우선 조항과 그리스·키프로스의 반대가 정치적, 법적 장벽으로 버틴다. 정문은 좁고 문턱은 높다. 가장 빠르고 값싼 능력을 갖춘 이웃을 형식상 배제하면서도 뒷문으로는 손을 잡는 이 모순이, 오늘 유럽 안보의 민낯이다.

 

그런데 협력은 정문이 아니라 옆문으로 흐른다. 튀르키예의 렙콘은 독일 땅에 155밀리 포탄 공장을 세우고, 바이카르는 이탈리아 피아지오 항공을 인수하며 레오나르도와 손을 잡는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하늘에는 이미 튀르키예 드론이 난다. 뒤즈 박사가 제시하는 통합의 길도 여기서 갈린다. ▶첫째, 동유럽과 남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 깊게 다진다. ▶둘째, 이탈리아식 모델처럼 유럽 시장에서 직접 생산자로 뿌리내린다. ▶셋째, 나토와 양자 협정을 지렛대 삼아 제도적 방산 동맹으로 나간다. 봉쇄된 대문 대신, 공동 프로젝트와 하청과 공동 생산이라는 실핏줄로 이어지는 통합이다. 이 길이 열린다면 유럽과 튀르키예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벽을 세우는 손과 다리를 놓는 손이 같은 대륙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셈이다.

 

결국 이 모든 셈법의 밑바닥에는 오래된 물음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두꺼운 성벽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온기인가. 그러나 오늘의 유럽은 보습을 녹여 다시 칼을 벼려야 하는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그 역설 앞에서 마음이 시리다. 자물쇠를 채우느라 난로를 끄는 집에는 도둑은 못 들어도 온기가 사라진다. 반대로 난로만 지피다 문이 뚫리면 그 온기마저 빼앗긴다. 지혜란 어느 하나를 버리는 결단이 아니라, 둘을 나란히 살려낼 좁은 길을 끝까지 더듬어 찾는 인내일지도 모른다. 

작성 2026.07.10 00:42 수정 2026.07.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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